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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2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2





그림, 유사, 확언.

이미지 속 파이프는 정말 파이프일까? 아니면 이미지 속의 글씨처럼 파이프가 아닐까?


아마 내가 처음 접한 '이것이 파이프가 아니다'는 이런 그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의 파이프와 그 아래의 언어. 칼리그람. 


이 묘한 배반 관계를 처음 접하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래 사진 이미지 속의 모습이 그 자체라고 할 순 없다. 가족사진을 보며 손으로 지시한다. '이 사람은 아빠고, 이 사람은 엄마야'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 이미지에 갇혀 있다. 무언가의 흔적으로 사진이 남았지만 그 자체가 무언가는 될 수 없다. 고로 사진 속의 부모님은 나의 부모님이 아닐까? 


현실을 그림보다 분명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진은 보다 논란이 가중되겠지. 하지만 마그리트의 파이프는 데셍에서 시작해 데셍으로 끝난다. 미술 수업이 있는 한 교실의 가운데에는 석고상이 하나 있다. 학생들을 석고상을 둘러싸고 앉아 교사의 지시를 받는다. '자 이 앞에 있는 석고상을 그리세요' 각자 묘사하는 석고상은 실력에 따라,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의 석고상을 묘사한다. 어떤 것이 석고상이고 어떤 것이 석고상이 아닐까. 그림은 확언을 가질 수 있을까. 


미셸 푸코는 '상사'와 '유사'에 대해 언급한다.

상사: 서로 모양이 비슷함

유사: 서로 비슷함


뭘까. 뭐가 다른걸까. 그의 예문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내가 보기엔, 마그리트는 유사(ressemblance)에서 상사(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를 전자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원지고 위계화된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단서다.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고 한다. 

그말인 즉슨 하나의 오리지널을 중심으로 닮은 것들이 늘어져 있는 것일까.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하나의 실제 석고상을 중심으로한 그림들. 그들은 유사하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simulacre)를 순환시킨다."


모의 옆에 달린 (프랑스어로 추측되는) 글을 읽으니 '시뮬라크레'가 된다.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 되풀이. 그림보단 사진의 복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가 밝히는 유사와 상사는 이렇게 다르다. 사진과 그림은 첫 순간에 현실을 재현한다. 하지만 사진은 유사 이후에 상사를 거듭한다. 


하지만 미셸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재현 Representation> (1962)를 통해 재현에 대한 낯선 시선을 밝힌다. 재현된 상황이 재현된다. 재현된 이미지에 있는 일련의 또 다른 재현들. 무엇이 무엇을 재현하고 있는지 혼란스럽게한다. 여기서 제1의 참조물은 무엇일까. 재현은 주인을 찾는다. 하지만 상사체들은 주인이 없다. 자유로이 세계를 달린다. 마구 펼쳐진다. 


<데칼코마니>에서는 상사적인 표현으로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월성을 발견하는 미셸 푸코다. 이것은 저것이고, 저것은 이것이다. 이것과 저것 사이의 지시는 계속되고 똑같은 단언도 계속된다. "상사는 상이한 확언들을 배가시킨다"


"그 확언들은 함께 춤춘다. 서로 기대면서, 서로의 위에 넘어지면서"


"이 모든 구도들 위로, 그 어떤 참조틀로도 고정시킬 수 없는 상사체들이 활강하고 있다. 출발점도 지주도 없는 이동들인 것이다."


정리를 해보려고 할수록 책을 더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읽자. 다시 공부하자. 다시.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