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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

미셀 푸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고려대학교출판부


1. 이 책은 대학교 3학년 때 '사진미학'이라는 수업의 과제를 위해 구매했다. 당시 미학에 관련된 서적을 읽고 금을 써오거나 요약을 해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롤랑바르트의 '밝은 방'을 택하곤 했다. 가장 무난했고, 또 2학년 때 한 수업에서 이 책을 다룬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읽은 책, 곱씹은 책을 다시 한번 보는 것보단 새로운 책에 도전해보는 것이 나를 위해선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뭐, 미학에도 진중권씨의 미학오딧세이와 같은 탄탄한 입문서도 많았지만 2주라는 짧은 시간에 다른 과제를 병행하기 위해선 보다 적은 페이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사진이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택한 책. 


2. 고등학교까지 미술 수업을 참 좋아했다. 물론 손재주가 없어서 성적은 늘 좋지 않았지만 미술사에 대해서 만큼은 교과서와 프린트 물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늘 아이러니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미술사에선 꽤 혁신적인 현대 작품까지 배웠음에도 '왜 실기 평가에선 여전히 모사에 치중하는가'였다. 물론 초등학교 때 읽었던 피카소 전기에서 읽었던 바와 같이 자신의 색을 뽐내는 많은 작가들도 초반에는 모사에 치중했다. 안다. 하지만 특유의 손재주는 없지만 재미있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는 있었다. 그게 현대의 동시대 미술이 아닌가. 하지만 우린 글로 배웠던 것을 평가 받지 못했다. 5지 선다형 안에서만 나의 지식을 평가 받을 수 있었다.


3. 그러던 내가 대학에 와서 만난 아티스트가 르네 마그리트다. 그는 모사에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모사는 결코 현실을 가리키지 않았다. 재밌다. 가장 현실적인 모사를 통해 가장 비현실을 선보이는 작품들. 단번에 빠져버렸다. 사진을 하는 내가 현실의 모사라는 틀 안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그 어린 날의 치기와 딱 맞았달까. 


4. 20살의 독일에서 식비도 차비도 아끼며 살아가던 그때 매일 습관처럼 가던 서점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화집이 할인 판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10유로. 덜덜 떨리는 가격이었지만, 사람들의 손을 하도 타서 너덜너덜하지만 그래도 내겐 더 없는 행복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책장 한구석에서 작업 도중 슬럼프를 맞이할 때마다 힘을 주던 작품들이었다. 그의 의도를 하나하나 다 읽을 수는 없지만 물론 지금 역시 마찬가지지만 뭐랄까 이미지를 이미지로 이해하고 이미지로 위로받는 것. 내게는 르네 마그리트가 그런 막연한 쉼터다. 


5. 미셀 푸코는 사실 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범죄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발을 담군 적이 있는데 그때 필연적으로 만났달까. 특유의 역사학자 같은 글 전개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직관적인 철학을 좋아하는 내겐 아무래도 어려운 존재였다. 


6. 그래서 이 책의 첫 느낌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아직은 내게 아리송한 철학자가 분석한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구조주의도 내겐 낯설었고, 푸코 특유의 말투도 낯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단기간에 읽어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원래는 이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결국 시간이 부족해 요약본을 제출했다. 하지만 아마 읽어본 사람들은 알지만 이 책은 요약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7. 시간적 제약이 끝내 아쉬웠던 나는 6개월의 여행 길에 읽을 책 5권 중에 이 책을 꼽았다. 3개월 동안 이 책만 두 번을 완독했다. 그래도 아직 이해가 부족하다. 하지만 차츰 눈에 보이는 것이 늘어가며 하나 둘 정리하고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게는 사연이 참 많은 책이라 서론도 길다. 런던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을 마주하고 무척 반갑고 감격스러웠는데 이후엔 영 감감 무소식이다. 평생 조금씩 하나 둘 알아가고 싶은 작가다. 그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다 읽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여전히 언어는 빈곤하고, 사상에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