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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뒤늦은 출발

Typ 1.


며칠 전부터 원서 읽기를 자처했다. 남들은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서 몇 년 동안 꾸려나가는데 뭐 그럴 사람도 없고, 그런 스터디 그룹에 대한 회의도 많고 해서 혼자 시작. 시작의 계기는 다분히 충동적이였다.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 다시 보는 인터뷰들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월간 사진에서 진행한 사진 비평가 3인의 대담이다. 학부 시절 수업 하나를 듣고 정말 사진의 역사에 홀딱 빠진 적이 있어서 그 이후 박상우 교수님의 인터뷰나 글을 되도록이면 꼬박꼬박 읽는 편이다. 이번에도 쭉 다시 읽어나가고 있는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원서로 공부하라!"

"그가 힘들다면 적어도 영문판은 읽어라!"



Typ 2.


한 페친이 추천한 이상엽 작가의 글을 보고 생각이 많아져 뒤숭숭한 느낌에 수업을 마치고 걷는 시간에 내내 그 생각 뿐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작품을 서양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 아무래도 자체 이론이 전무하다시피 하는 판국에 독자적인 구조를 찾자는 건 억지이지 않을까 싶지만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6년 전 생각했던 점이었지만 나 역시 한국 철학에 대해 무지했고, 분명 누군가 똑똑한 놈이 준비하고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봤을 때 독일 철학, 프랑스 철학, 영미 철학은 사상가의 나라에 따른 큰 범주 나누기의 결과물 아닌가 싶다. 개개인의 사상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며 볼 수 있는 큰 우물. 하지만 우물을 이루는 물고기들은 각각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물론 과거의 나 역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에 맞는 우리의 철학, 우리의 사상을 원한다. 하지만 '한국만의 철학'은 어디에도 없다. 


비평가 또는 평론가, 철학자, 미학자들이 각자의 개별적이고 특색있는 자신만의 사상을 길러 하나의 프레임으로 완성시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사람의 어떤 이론으로 우리의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육만 보더라도 폭넓은 동양철학 안에 한국 철학은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생각이 많아졌으나 결국은 한국의 철학이라는 큰 범주로 보지 말고 나만의 사상을 구축해보자는 작은 다짐으로 마무리 됐다.


19살이라는 나이가 참 미숙하긴 하지만 두뇌회전은 좋았다. 그때 읽었던 철학자 함석헌 선생의 책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유일하게 강렬했던 한국 철학자랄까. 어째 그게 고등학교 도서관에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다시 그 책을 읽고 싶다. 방황하는 내게 조금의 해답이라도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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