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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진심이 닿다

직장에 다닌지 2년이 다 될즈음 나는 대안 공간과 소규모의 프로젝트 그룹에 꽤 많이 빠져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70-80년 대 사회에 대한 같은 사상을 지닌 동지이자 끈끈한 그룹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따돌림을 당해본 나에게 그룹 활동은 가장 어려운 일이자 가장 동경했던 일이다. 나는 늘 항상 겉돌았으니까. 함께 있는 듯 보여도 난 그룹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고, 내가 떠나도 누구도 잡지 않았었다.


가장 정치적이었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강직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었다. 불합리를 부조리를 외치며 누구보다 앞장서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들과 나는 매일 밤 술과 함께 강직한 생각을 공고히 했고, 아침이 되면 해장국 집에서 한사발을 먹고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사상의 동질성으로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간 나는 사상 때문에 돌아섰다. 그때의 난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가 돼버린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할 수 없어 돌아섰다. 겁쟁이처럼 그저 도망나왔다.


그 이후 나는 누구와도 생각을 공유하고 공고히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작은 생각들이 동지를 만나면 힘이 생기고, 그 사상의 힘을 생성한 사람들도 막을 수 없으니까. 나는 그룹이라는 미명 하에 사상의 폭력을 휘두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흐르는 대로 두었다. 하나의 책을 만들어 갈 때도 예술에 대한 나의 생각이 책 전반에 녹아있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난 후배들의 아이디어를 막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붉은 펜으로 그어나가지 않았다. 최소한의 개입이 나에겐 최선이었다.


독일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많이 고민했다. 남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난 사실 돈이 궁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소모적인 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돈을 벌 수 없다면 아껴쓰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했고, 공부를 시작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글을 쓸 시간이 많아졌다. 사진 한 장에 조급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러자 바로 나태해졌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독일에서 예술하기'라는 페이지. 그들의 포스팅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약간의 진심도 느껴졌다. 독어도 아직 부족하고, 베를린에 대해선 더더욱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나도 이런 그룹에서 함께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아주아주 오랜만에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그런 믿음 같은 것이 생겼다. 자신들끼리만 하며 지인들을 통해 그룹의 구성원을 늘릴 수도 있을텐데 그들은 개방했다. 그룹을 열었고, 사람들을 모았다.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내려놨고, 그래도 함께할 수 있을만한 사람을 구하는 것 같았다.


사실 지원금이나 이런 컨디션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내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만 자리잡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하고 싶어도 혼자이기에 포기했던 것들. 접어야 했던 마음들 시도들. 진심을 꺼냈다. 나 역시 진심과 약간의 우려를 그저 날 것으로 드러냈다. 꾸밀 시간도, 필요도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약간의 두려움은 있다. 하지만 설렘이 더 크다. 사회에 나와 보니 알았다. 내가 한 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 아주 보편적인 존재라는 것.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난 그저 지나가는 행인1에 불과헀다. 오래도록 쌓아온 커리어는 시간 앞에 무력했고, 그저 아이들 장난으로 취급 당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 모두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안다. 하지만 진심을 지닌 이들이 함께 했을 때 나타나는 시너지는 개개인을 봤을 땐 예상할 수 없는 정도의 크기다. 부디 이번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일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내 진심은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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