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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Die Zeit es geht

** 공간을 가득 메운 공허함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틀기 시작한 음악들. Youtube의 자동 재생 기능에 무척 감사하며, 과거 한참 많이 들었던 음악들을 하루종일 듣고 있는다. 공부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생각을 할 때도, 울고 싶을 떄도. 이렇게 슬픈 노래들이었다니 아주 오랜만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 노래들 앞에서 나는 15살의 중학생의 모습으로 서 있다. 과거들은 이렇게 노래 속에, 향기 속에, 작은 사물 속에 숨어있다 지금의 내가 공허한 시점에 불쑥 튀어나온다. 스물 일곱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때의 나에게 '괜찮아, 잘 버텨왔어'라고 위로하는 일뿐이다. 훗날의 나 역시 오늘의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잘했다고 토닥여줄 것이다. '사랑한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 하얀 천장을 그저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투둑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금새 어두워지고, 바람은 하염없이 창문 틈 사일 오갔다. 며칠 전 새벽의 풍경이 오버랩된다. 홀린듯 미친 사람처럼 공책을 찢어내고 카메라를 켰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참을 사진 찍는 것에 집중했다. 결과물이야 어떻든 상관 없다. 그저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흘러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 작업 아닌 작업. 나는 매번 다시 만나는 것을 담았다. 이미 다녀온 곳은 잘 안가는게 여행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다시 방문하곤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고작 2박 3일은 너무 짧지 않나. 아무렴 수 백년의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수 많은 일상과 사람들을 품고 있는 도시와의 만남에서 2박 3일, 3박 4일은 눈인사만 짧게 하고 지나치는 것처럼 아쉽다. 특히 낯선 도시에서 겪는 낯선 감정들,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잊혀지지 않는 추억, 기억들. 다시 만나기 위해 같은 곳으로 떠나곤 한다. 내 작업은 그렇게 다시 마주한 도시에서 시작한다. 혹은 다시 마주한 순간들에서 시작한다. 


**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감성에 감사한다. 피사체를 선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늘 그렇듯 직관의 힘이다. 시간의 흐름이며, 무작위적이다. 회사원이던 시절 하루에 해야만 하는 몇 개의 일들을 생각하듯 생산적으로 해낼 수 없다. 습관이 무섭다고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느릿느릿해서 완성은 할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완성이라는 말 자체가 웃기다. 끝이라고 덮어버린 작업에 10년 후 한 장의 사진이 더해질 수도 있고, 고작 3컷 완성했지만 영영 더는 추가할 수 없는 작업이 있지 않겠는가. 가장 갑갑했던 졸업전시를 마무리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세상의 잣대라는 이데아에서 벗어나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보자"였다. 틀은 아늑하지만 좁고 답답하다. 그래서 지금의 난 아슬아슬 틀 위를 걷고 있다. 툭 떨어져 버리자. 그러자.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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