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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muss ich sein

1. 우울한 하루의 끝을 맥주로 달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문을 살짝 열어두고 잤는데 자정즈음 천둥번개에 눈을 뜨니 어마어마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 비소리를 듣고, 천둥번개를 바라보다가 2시쯤 잠들었는데 결국 5시에 깼다. 평소 10시간씩 자던 내가 일찍 눈을 떴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개운한 느낌. 간밤의 비가 모든 것을 씻어준 느낌이다.


2. 드디어 학원을 등록하러 갔다. 한국의 괴테에서 Intensive Kurs를 들으면 한 달에 45만원 정도였는데 그에 비해 저렴했다. 225유로 정도면 타협할만한 가격이었다. 물론 VHS는 한 달에 150유로니까 훨씬 저렴하지만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시간 여유가 넉넉하지 않은 나에겐 돈을 더 지불해도 당장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중요했으니까.


3. 먼저 읽기와 쓰기 시험을 봤다. 예상대로 A2까지는 Super. B1은 간당간당했다. 아무튼 담당자가 매우 기뻐하며 듣기 말하기 시험을 시작하자고 했는데 멘붕이 왔다. 듣기는 되는데 역시 말하기는 마음대로 안되더라. 이 격차를 어찌할 것인가 하며 매우 난감해 하던 담당자는 A2.2부터 시작하는게 나을거라 했다. 대신에 말하기가 무척 약하니 금요일에는 별도의 Sprache Kurs를 듣는게 좋다고 추천했다. 원래 수업이 월-목이니 금요일 한 번 더 듣는게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4주에 50유로라 하니 나쁜 가격도 아니었다. 


4. Alexander Platz에서 수업을 듣게 되면 Monate Karte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걸어선 왕복 2시간 30분. 걸을 순 있으나 오전 9시 수업을 생각해선 S-Bahn이 효과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 수업 인원이 이미 차버려서 다른 곳을 추천했다. Wittenberge Platz라고 해서 꽤나 멀줄 알았는데 오히려 집에선 걸어서 26분 거리. 딱이었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해야할 지경. 다만 금요일 수업은 Alexander Platz에서. 뭐 나쁘지 않았다. 


5. 장장 2시간의 Anmeldung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가는 길. 1시간 13분 거리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여행자로 왔던 그 길을 쭉 걸으니 7년 전 겨울 민용오빠랑 여행을 왔던 기억도 나고, 최근에 혼자서 1박 2일로 왔던 여행도 생각이 났다. 그나저나 베를린 생활을 시작한지 1주일이 넘었는데 랜드마크라 불릴 곳은 거의 안 갔다. 그래도 오늘 걸으며 독일의 수도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올 곳이니 그때마다 한 곳씩은 다시 가봐야겠다. 내 인생에 다신 오지 않을 시간들이니까.


6. 난 해야만 해. 그래야만 해. 라고 일상의 순간마다 다짐을 하곤 한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단단해질 필요가 있었다. 사춘기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채 20살이 되어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다투지 않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7년이 지난 오늘의 난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믿어야 했다. 매순간 끊임 없이 다짐한다. 난 그래야만 한다고. 


7. 사실은 조급한 마음이 있다. 자꾸만 구직 사이트를 접속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정작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병이다. 뒤쳐질까 겁내하는 병. 약간의 열등감. 후회. 그래도 훗날 분명 나는 후회하지 않을거다. 이곳에서의 시간들, 노력들, 도전들. 근데 분명한 것은 직업을 한 번 갖고 나니 '꿈'이 '특정 직업'으로 향하는 것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 꿈에 대한 길고 긴 문장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100% 달성하긴 어렵겠지만 단 1%라도 가까이 닿았다면 꿈을 이루고 있다는 확신 혹은 설렘, 기대, 희망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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